[막장, 조용하고 느리게]는 어린시절 탄광촌에서 자랐던 기억을 재현한 사진집입니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예닐곱 살의 꼬마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언니 오빠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늘 검은 작업복을 입고 계셨고, 동네는 언제나 회색이었습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도 회색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월에서 전근오신 담임 선생님이 눈은 원래 흰색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흰빨래를 널어 놔도 회색이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랑물도 짙은 회색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기억들을 가장 근접해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아노타입이라는 특별한 프린트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시아노타입은 아주 오래전 사용했던 사진인화 방법입니다. 1842년 John Hersche경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종이나 천에 염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에겐 청사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방법입니다.
사진을 찍고, 포토샵작업을 해서 필름을 뜨고, 그 필름으로 시아노타입을 합니다.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그야말로 원본이 단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청 더웠던 2017년 여름, 시약을 바르고 노광을 주고 인화지 씻어 말리고 같은 행동을 수도 없이 하고 나서야 돌아가신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큰오라버니까지 한자리에 같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탄광의 이미지와 푸른느낌의 시아노파입은 궁합이 잘 맞습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눈으로 그리며, 손끝으로 완성해 내는 것이 진정 예술인의 길이 아닐까합니다.
이정우
경기도에서 정우사진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포토에세이로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시흥시에서 사진강의를 하고 있다.
두 번의 사진개인전을 열었는데, 첫 번째는 [스침, 그 순간]에서 다중노출촬영 작업을 해서 전시하고, 두 번째는 [막장, 조용하고 느리게]는 시아노타입 프린트 작업 전시를 했다.
펴낸 책으로는 포토에세이 [쬐그마니의 들꽃산책], ebook으로는 [DSLR특별하게 사진찍기-다중노출], [포토에세이-오후3시, 그곳], [포토에세이-바다가로등], [포토에세이-비밀의 정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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